자조적 회고록 - 어머니의 기도.

중학교 3년 동안, 나는 포켓몬에 미쳤었다. '그때'의 나를 아는 인간들이라면 알 것이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때우겠지만(나중에 자세히 이야기 해주겠다) 만약 00~02년에 '키보드 워리어' 라는 단어가 있었다면, 그건 필시 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아니, 지금도 키보드 워리어이기는 하지만. 포켓몬 관련 사이트마다 다 돌아다니며 난장판으로 만들고, 몇몇 사이트는 아예 박살도 내보고 그랬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학교 3학년의 어느 날, (일은 항상 '어느 날' 에 일어난다) 어머니가 어떤 찌라시를 들고 오셨다. 교회쪽에서 발간하는 잡지인 모양인데, 대략 포켓몬이 악마의 상징이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니의 말도 그 찌라시와 똑같았다. 포켓몬은 악마의 상징이니 나는 하나님의 아들인 '요한'이가 그런 쪽으로 빠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이런저런 이야기. 그렇게 내가 포켓몬에서 빠져나오기를 종용하셨다. 아마 내가 있는 곳에서는 하지 않았겠지만 새벽기도 다니시면서 기도도 하셨으리라 믿는다.

분명 어머니의 기도는 통했다. 그 이후로 포켓몬에 대한 재미는 시들어 버렸고 나는 그쪽 세계를 완전히 벗어났다. (벗어나면서도 하나 사건을 터트렸지만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하지만 벗어난 건 좋은데, 그 뒤에 빠져버린게 애니메이션과 만화였으니 그거 참 문제다. 나는 자연스레 십덕후가 되어버렸고 이제 어머니는 아들의 깽판에 손을 놓았다. 차라리 그때 기도를 하지 말았으면 포켓몬이나 하다가 끝났을 운명을,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든 셈이랄까. 부모들은 나의 경우를 반면교사 삼았으면 좋겠다. 딱히 주변에 피해 끼치는 거 아니라면 그냥 하두도록 놔두게 말이다.

by 수시아 | 2007/04/14 19:23 | 무규칙 이종사고 | 덧글(18)

Commented by mini at 2007/04/14 19:26 # x
풋 [...]
수샤씨가 포켓몬에 미쳤을 시절이라 상상이 안 가네욤
Commented by 치이링 at 2007/04/14 19:56 #
저도 포켓몬에 미쳤었습죠.

...............

이거 제 이야기 같기도 하네요. 저희집은 불교라는걸 제외하면 말입니다.
Commented by 時水 at 2007/04/14 20:09 #
혹시 또 모르잖스. 지금쯤 19금 남성향 포켓몬 동인지를 그리고 있을지(.....)
Commented by ranigud at 2007/04/14 20:35 #
그 교회사람들은 이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Commented by DSmk2 at 2007/04/14 22:28 #
호미로 막을것을 가래로 막았다는 이야기입니까...
Commented by ranigud at 2007/04/14 23:40 #
DSmk2// 그보다는 호미로 막으려다가 긁어부스럼을 만들어서 이제는 삽으로도 못 막는다는 거죠.<-
Commented by DOT3 at 2007/04/15 00:43 #
에라이 십덕후
Commented by 미랑여낭 at 2007/04/15 01:34 # x
이럴때는 가족들이 무교였다는 것에 감사를...
Commented by Reality at 2007/04/15 02:41 #
아직도 포켓몬에 미쳐있는 인간 여기 하나...-_-;
뭐 + 십덕후지만요 저도.
Commented by 고무루피 at 2007/04/15 05:54 #
11년째 미쳐있는 인간입니다 [...]
저도 흔히들 말하면 오덕후 십덕후에 들어갈 부류겠지만,
저는 교회사람들 앞에서 포켓몬을 해도 뭐라고 딴지가 걸려온적은 없었습니다;
Commented by 소시민A군 at 2007/04/15 09:36 #
그냥 전진하셨으면 포켓몬(게임)+애니+만화였을지도 모르죠.
Commented by 지벨룽겐 at 2007/04/15 12:18 # x
저도 A군님 의견에 한표
Commented by lastwaltz at 2007/04/15 16:19 #
뭐....카캡사도 악마 어쩌구 라고 지껄이지 않았는가....
.....어쨌든 포케몬에서 빠져나온게 여러가지로 타이밍이 적절했군.
Commented by SePiRoTh at 2007/04/15 20:39 #
달렸죠.....
Commented by 수호기사 at 2007/04/15 23:08 #
그런 의미로 본다면 저의 유년에서 중딩 시절은 참 건전했.... (근데 지금은?)
Commented by Ikarna at 2007/04/16 18:33 #
부모님은 제가 뭘하든 별로 간섭하지 않으셔서... 그전에 변명거리를 만들어둔 제 탓(?)도 있지만요.
Commented by Anatomist at 2007/04/18 01:09 #
씹덕의 피는 신이 내려주었군
Commented by 수시아 at 2007/04/22 11:24 #
mini // 저도 그 시절이 이해가 안 갑니다.
치이링 // 그때 인터넷을 하셨다면 저랑 마주칠 기회도 있었겠군요.
나머지 과거는 좀 더 나중에.
時水 // 그림은 잘 못그려요. HEHEHE.
ranigud // 이 뭐 막장.
DSmk2 // 이제는 어떻게도 대처 못하죠.
DOT3 // 그러니까 이제 그런 소리 해봤자.
미랑여낭 // 부럽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이 싫어요.
Reality // 반갑습니다. 동지?
고무루피 // 교회사람들이 온건해서 좋으시겠습니다.
소시민A군 // 그래도 덜 오덕거렸을지도.
지벨룽겐 // 적어도 지금 수준은 아닐걸요?
lastwaltz // 후. 옛날에 놀때 신비로 아디가 poke777이었죠.
그놈의 포켓몬...
SePiRoTh // 다들 포켓몬에. -_-;
수호기사 // 지금도 건전하시지 않습니까.
Ikarna // 사전작업의 중요성.
Anatomist // 진짜 이건 DNA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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