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던 이야기 또 하기.

아버지가 내개 보여준 가장 추한 모습은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것이었다. 휴일 아침에 김치찌개가 싱거우면, 그 비난이 하루종일 계속된다. 아침 밥상머리 위에서, 식사가 끝난 후에, 그 다음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 그 사이마다 간간히, 왜 김치찌개가 싱겁냐는 말을 어머니한테 끝도 없이 내뱉는 것이다. 미안하다 다시 하겠다는 어머니도 세번 이상은 못 참으니 그만 좀 하라고 해도 그 비난은 멈출 줄 모른다. "아 그거 생각할수록 열받네!" 하면서 또 아침의 김치찌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김치찌개가 싱거운 게 이정도니 아버지에게 혼난다는 것은 공포보다는 지겨움의 연속콤보다. 치약을 중간부터 짜서 쓴다고 주의를 받았더니, 아버지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나를 불러서 치약을 끝부터 짜서 쓰라는 말을 계속 들어야 했다. 당연히 했던 말을 질리지도 않게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싫어졌다. 다른 건 몰라도 같은 말을 저렇게 반복하지는 말아야 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이쯤되면 개나소나 예측할 수 있는 상투적 반전이다. (사실 이 말도.)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게, 쉬운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 사람한테 이 이야기를 했는지 안했는지 항상 궁금해진다. 애써 한 이야기가 "그거 예전에 했던 말인데" 라는 반응이 돌아오면 내 기분이 우울해진다. 이유가 어찌됐건 간에 내가 그런 식으로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간다는 게 싫다. 나한테는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것이 하나의 강박인 것이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면 내가 그 모습을 닮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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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아 | 2007/07/01 10:47 | 무규칙 이종일기 | 트랙백 | 덧글(9)

Commented by BabyNine at 2007/07/01 12:02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벗어났을 때면 이미 싫어했던 그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겠죠. 그게 끔찍한 겁니다.
Commented by 스텔스좀비 at 2007/07/01 14:12
.........이걸 보고 편집증(paranoia)라고 하는데, 좀 중증이시군요....
이런 경우 주변 사람들이 상당히 피곤해집니다만 본인은 전혀 자각을 못하죠.
Commented by ranigud at 2007/07/01 17:15
뭐 욕하면서 닮아간다고 하지요.
Commented by lastwaltz at 2007/07/01 19:54
제일 무서운게지....싫은 사람을 닮아간다는거.
난 그냥 들은이야기라도 적당히 맞장구 치면서 듣는게 습관이 되어있지.
내가 한이야기를 자주 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렇게 되버린듯.
Commented by 時水 at 2007/07/01 23:39
저게 내 술버릇임. 옛날에 했던 이야기 또 하기.
Commented by 소시민A군 at 2007/07/02 06:25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죠 뭐.
Commented by Kyrie_KNOT at 2007/07/04 17:25
살다보니, 제일 싫어하는 사람을 어느새 닮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_-
Commented by 1호선 at 2007/07/05 03:11
주위에 저런 '까칠한' 버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고통을 잘압죠.
그래서 처음에는 얘기를 해서라도 고쳐줄려고 했지만, 지금은 소귀에 경읽기 모드가 됐습니다. -_-;
Commented by 수시아 at 2007/07/06 19:45
BabyNine //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스텔스좀비 // 심각한 수준입니다.
ranigud // 그러게 말입니다.
lastwaltz // BGM - 아버지와 나. (N.EX.T)
時水 // 교장선생들의 주특기라지.
소시민A군 // 너그럽게 받아주시니 다행입니다.
Kyrie_KNOT // 괴물과 싸워 이기고 보니 내가 괴물이 된 격.
1호선 // 언제나 반성하고 있지만 깨기는 힘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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