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컴퓨터 잡지.

어렸을때 나는 친구와 노는 시간보다는 컴퓨터와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286시절부터 컴퓨터를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로리!님 처럼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컴퓨터와 많이 붙어있었을 뿐이다. 초딩들이 메이플 한답시고 컴퓨터 앞에 미친듯이 붙어있는 것, 그걸 연상하면 편하겠다. 뭐 그렇게까지 게임은 안했지만. (게임에 잘 몰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컴퓨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주된 이유로는 컴퓨터를 자주 고장내서 그걸 고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아버지한테 손벌리다가는 그렇게 좋은 소리는 못들었으니. '내 손으로 내 컴퓨터를 고치자' 라는 생각으로 컴퓨터잡지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PC서울] 이라는 잡지를 구독했다. 그때가 95년이었을 것이다. 부록으로 5.25인치 디스켓에 간단한 게임(오셀로)을 담아줬는데, 안타깝게도 내 컴퓨터에서는 3.5인치 드라이브밖에 없었다. 요즘처럼 컴퓨터 보급이 잘된 것도 아니기에, 친구네 집에서 게임을 복사한다는 건 꿈도 못꿨다. 그것을 얼마나 하고싶었던지. 나중에 오셀로게임을 받아서 해보니까. ............너무 어렵다. 역시 난 게임 자체를 못한다.

구독한지 1년이 덜되서 PC서울은 폐간되고, 나는 이름이 비슷한 [PC사랑]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이 잡지는 지금도 발행된다.) 1년이 지난 것 뿐인데 부록은 5.25인치에서 CD롬이라는 매체로 바뀌어 있었다. CD롬에 들어가는 수많은 데모게임과 셰어웨어들. 잡지의 내용보다도 맨 뒤에 소개해주는 프로그램들의 설명을 다 읽어보고 맘에 드는 것을 깔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직접 써보고 기호를 동원해서 실용성을 판단하기까지 했다. ★ ○ △ X 를 이용해서.

PC서울이건 PC사랑이건 잡지를 사오면 나는 그것을 광고부터 편집자후기까지 모조리 읽었다. 글자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는건 오버고, 적어도 기사를 서너번은 계속해서 읽은 것 같다. 그 덕분에 나의 독서습관이 형성된 것 같다. '윈도우즈 속도 30% 향상' '레지스트리 정리' 같은 팁이 있으면 실천해보기 일쑤였다. 실천하다가 컴퓨터도 몇번 날리고, 그러면 잡지에서 배운 방법대로 컴퓨터를 복구했다.

그 와중에 IMF가 터졌다. 아버지가 20년이상 다니던 회사를 명예퇴직했다. 아버지는 테크노마트에서 조그만 사업을 시작했고, 나의 컴퓨터는 아버지한테 넘어가고 말았다. 당연히 컴퓨터를 쓸 수가 없었다. 잡지를 보고서 상상으로 컴퓨터를 쓸 뿐이었다. '상상플레이'라는것을, 나도 경험했다. 머리속에서 열심히 굴러가는 윈도우와 프로그램들. 띵띵띵띵~치지지직 거리는 모뎀소리. PC통신의 파란 화면. 머리 속에서는 최고급의 PC가 왠종일 굴러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국민PC가 보급되었다. 그리고 집안사정이 좀 나아져서 컴퓨터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이제는 왠만한 친구가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은 리니지같은 온라인게임을 즐겼다. 나는 게임보다는 애니와 만화에 집착하게 되었다. (지금도..) 당연히 컴퓨터 잡지와는 조금씩 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예전에는 하드웨어 기종과 스펙을 달달 외우고 다녔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건 애니와 만화 캐릭터 이름이었다.

고3이 되었다. 어머니는 공부를 하라며 PC사랑의 구독을 끊었다. 사실 그 예전부터 PC사랑을 잘 보지도 않았던고로, 나는 별 신경을 안썼다. 잡지구독이 끊긴다고 내가 공부를 했던것도 아니고, 컴퓨터는 여전히 열심히 했다. -_- 역시 애니와 만화에만 집착했다. 첨언하자면, 스트레스를 정화하기 위하여 락음악도 어느새 내 두뇌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컴퓨터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대학교에 합격한(이제 입학할) 지금은, 컴퓨터잡지를 볼 수 있음에도 컴퓨터 잡지를 구독하지 않는다. 더이상 잡지를 봐야할 정도로 정보의 유통이 단순하지 않고, 내가 그 정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잡지 살 돈으로 만화책 두세권(정발판 기준)이 떨어지는데, 내가 왜 잡지를 사겠나. 더군다나 나에게는 컴퓨터에 대한 열정도 없다. 그러면서 내가 왜 '컴퓨터정보공학부' 에 들어왔는지, 정말 아이러니컬하다.

by 수시아 | 2005/02/17 22:42 | 무규칙 이종사고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천극J군 at 2005/02/17 23:40
286때 막 컴퓨터에 열의를 가졌을 때엔 컴퓨터 열심히 배워서 장래에 컴퓨터관련 직종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만..... 어느 순간부터 컴퓨터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쌔고 쌨다는 것을 알고는 포기했습니다......
Commented by 여신수호기사 at 2005/02/17 23:49
전 성격상 어느 한쪽에 몰두하는게 굉장히 어려워서...(산만한 성격?)
덕분에 고생이에요~;;;
Commented by 불꽃빅장교사 at 2005/02/18 02:18
이에 비해서 1999년 6월 18일에 컴퓨터를 도입한 본인은 그 역사가 상당히 짧은 듯..... (이제 6년차)
Commented by 리오네스 at 2005/02/18 06:35
컴공이시면... C!! C!!!! 씨이이이이이!!!!
Commented by Ikarna at 2005/02/18 23:02
처음의 그 열정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만해도 요즘은 걸게임에 손이 안가는 현상이...(거짓말)
Commented by 수시아 at 2005/02/19 13:08
천극J군 // 저도 반 포기상태입니다. 에휴-
여신수호기사 // 저도 산만하기로는 만만치 않습니다.
포스트 하나 쓰는데 뭐 이리 여러가지 하는지..
불꽃빅장교사 // 나름대로 newbie? (농담입니다.)
리오네스 // 크흐-...
Ikarna // 그러고보니 저도 걸게임에 손이 안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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