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무규칙 독서일기

책 읽다 헛소리 - 현실과 이상의 차이.

 06년 6월, 새로운 검색엔진 '첫눈'의 베타판이 공개되었을 때 나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검색은 구글 아니면 네이버가 담당했고, 첫눈을 꼭 써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몇 달 후 첫눈이 네이버에 인수된다는 소식 역시 나에게는 무의미했다. 그렇게 네이버를 위협할거라 생각되었던 첫눈은 조용히 인터넷상에서,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이시다 이라 (石田 衣良) 의 소설'도쿄 아키하바라'(원제 '아키하바라@DEEP'는 04년에 나왔지만 06년 '첫눈'의 등장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오타쿠, 히키코모리를 비롯한 6명의 사회부적응자 들이 도쿄 아키하바라에 모여 자신들의 회사 아키하바라 a Deep(이하 Deep)를 설립한다. 그들은 AI를 지닌 신개념의 검색엔진'크루크'를 만들어낸다. '디지캐피'라는 IT대기업이 그 검색엔진을 사려하자 DEEP은 인수제의를 거부한다. 크루크를 이용해서 수익을 얻으려는 디지캐피의 방침에 반기를 든 것이다.

 소설과 현실이 서로를 모방하다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첫눈은 네이버에 350억 원으로 인수됐고, '크루크'는 Deep구성원들의노력 끝에 지켜낼 수 있었다.(자세한건 책을 사서보길 바란다) 이제 와 인수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말을 하고픈 게 아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인데다, '첫눈'의 직원들도 심사숙고 끝에 내린결정이라 생각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끝까지 오픈 스트럭쳐 (Open Structure)를 고집할 수 있는 건 명백한 허구이니 말이다.

 즉, '첫눈'은 지극히 현실적인 방법을, 'Deep'는 소설답게 이상적인 길을 택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그 속에 있는 자를 상처 입히고, 짓밟고, 신선함을 빼앗아가는 악의, 인간들은 이런 악의를 가리켜 리얼리티라고 부른다."는 소설의 구절이 잊혀지지 않는다.

P.S. : 이번 외박은 동명의 드라마나 보면서 죽여야겠습니다. _-_ 소설의 내용을 어떻게 연출했는지 궁금하군요.

by 수시아 | 2007/02/17 11:54 | 무규칙 독서일기 | 덧글(4)

당신들은 독자를 내쫒고 있다.

오래 전에 도서 대출 순위에 대해 썰을 푼 적이 있는데, 이 도서 대출 순위가 맘에 안 드는 몇몇 사람들은 좀 더 적극적인 전략을 실행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은 학생들의 독서 풍토를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 2003년부터 아동물, 음란물과 함께 통속 소설도 구입 대상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외국소설의 득세와 한국 출판 시장. 표정훈. 문학과 사회 72호 215쪽.) 여기서 통속소설의 기준에 대해서 논하는 건 잠시 접어두자. 그들의 관점에는 도서관에서 ‘묵향’과 ‘은하영웅전설’을 보는 게 전혀 면학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공부도 안하고서 백날 묵향만 본다고 성적이 오를 리는 없다. 그것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묵향과 은하영웅전설만 없애면,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사전을 뒤적거리며 공부라도 한단 말인가? 더 이상 학교에서 그 책을 볼 수 없을 뿐이지 볼 놈은 다 본다. 직접 사보거나, 대여점에서 빌리거나 하는 식이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대놓고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놈도 있을 터이고, 공부는 뒷전이요 낮잠을 자거나 연애질에 열중하는 놈들도 있겠다. 없애나 마나 별로 바뀐 건 없는데 애꿎은 묵향과 은하영웅전설만 쳐 맞은 것이다.

이 조치는 책에 관심을 가지고픈 ‘잠재적 독자’ 를 반기기는커녕 내쫒는 행위다. 여태까지 공부만 하다가 (서울대라면 더더욱 그러겠다) 대학교에 와서 맘 편하게 책을 읽으려는 학생이, ‘자본론‘이나 ‘토마토 토익’ 같은 책만 있는 도서관에서 독서에 흥미를 붙일 리가 있겠는가. 아무리 통속소설이 시류에 편승하고 말초적이라 비난하더라도, 그런 책이라도 봐야 책에 흥미를 느끼고 다른 책도 읽어나가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쓸데없이 면학이니 엄숙함을 내세워 통속소설을 몰아내면, 무슨 책을 읽고 독서에 흥미를 붙여야 하나. 오히려 독서에 대해 반감이나 만들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서 지금도,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는 독서풍토를 바로잡으려다가 독서 인구를 줄이는 촌극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에게 묵향을 읽을 자유를 허하라. 당신들은 독자를 내쫒고 있다.

by 수시아 | 2006/03/07 16:20 | 무규칙 독서일기 | 덧글(8)

류시화.

중학교 3학년때 담임인 국어선생은 매우 의욕있는 사람이었다. 합창대회에서 부를 노래로 복음성가 '이 믿음 더욱 굳세라'를 골라서 왠종일 연습을 시키고, 반에서 드럼치는 친구를 어찌 잘 포섭해서 그 노래에 드럼반주를 넣게 했다. 그렇게 해서 나의 13반은 어찌어찌 1등을 했다. (드럼을 쳤던 그 친구때문일 것이다.)

그 의욕있던 담임이 국어시간에 역점을 두었던 것으로 독서교육이 있었다. 네 권의 책을 학교 국어선생끼리 선정하여, 선생들이 담당하는 반(들)에서 한 권씩 읽게 한다. 1~4반까지는 무슨 책, 5~8반까지는 무슨 책 하는 식이다. 그 책의 내용은 중간/기말고사에 나오며, 한 책을 다 읽었으면 반별로 그 선정도서를 바꿔서 읽게 한다. 그렇게 하여 중학교를 졸업할때쯤이면 적어도 네 권의 책을 읽게 하는 계획이었다.

그 책들의 제목은 아직도 생각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과 '전태일 평전', 그리고 류시화가 쓴 '하늘 호수로 떠난 이야기' 가 있었다. (나머지 한 권은 기억이 안난다.) 내가 류시화라는 인간을 접한 건 그 '하늘 호수로 떠난 이야기'가 처음이었다. 그 책에는 그가 인도로 가서 접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대체로 평범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책을 처음 읽었을때는 인도라는 곳이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책을 더 많이 읽어보게 되면서, 류시화라는 인간에 대해 환멸감만 늘어나게 되었다. '하늘 호수로 떠난 이야기' 후에 그가 쓴 '지구별 여행자'는 '하늘호수로 떠난 이야기'와 별 다를 게 없는 내용이다. 인도에 갔는데 그쪽 사람들은 매우 여유있고 정도 많더라, 천천히 느리게 사는 삶의 지혜를 알더라- 하는 내용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인도를 지상낙원으로 그려놓은 셈이다. 인도도 사람 사는 곳이고, 지독한 카스트 제도가 엄존하고, 빈부격차가 심각한 곳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인도 예찬은 끝이 없다. 그 예찬에 질려, 나는 '지구별 여행자'를 놓고 말았다. 이 인간에게 속고 말았다-는 느낌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런 책을 추천한 선생과, 추천도서라는 알량한 제도에 대해서도.)



궁금해서 그가 쓴 책과 약력을 모두 뒤져보았다. 요즘 많이 팔리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은 류시화가 치유의 시를 모아 '엮은' 시집이었고, 번역서로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가 있었다. 류시화가 쓰거나 번역한 책들은 으레 그런 것이었다. 명상과 인도와 치유의 메세지들.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쉽게 버릴 수 있는 책을 정기적으로 내면서, 그는 '명상'과 '인도'를 아주 영리하게 팔아먹고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책을 팔아먹을 것인가?

by 수시아 | 2006/01/18 21:31 | 무규칙 독서일기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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