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 실린 11월 16일자 '파워 클래식'을 봤습니다. 한 해가 넘어가는 마당에 지나간 기사를 끄집어 내서 참 죄송합니다만, 저의 심란한 마음은 어떻게 해도 진정되지가 않는군요.
앞으로 할 말에 대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 그리고 저에 대해서 간략하게 밝혀두겠습니다. 저는 클래식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관심있어 하는 것은 록큰롤과 일본의 애니메이션 음악들뿐입니다. 베토벤보다 비틀즈가 좋고, 모자르트보다 칸노 요코가 더 좋습니다. 게다가 당신이 하시는 클래식에 대해서는 음악시간에 듣기시험용으로 벼락치기 한 게 전부입니다. 그것마저도 이제는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그러면 제가 무엇이 언짢아서 당신에게 이렇게 말을 하려는 걸까요. 당신은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5번에 취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당신의 그 15번에 대한 집착이 그 11월 16일자의 파워클래식을 만들어냈는데, 사실 클래식 전공자로서 15번 말고도 할 이야기는 많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클래식에 베토벤만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것도 못하겠다면 당신은 15번에 대한 극찬을 적절히 조절해야했습니다. 어째서 '위대한 곡' 이 당연한듯이 '베토벤 후기현악 사중주' 로 연결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클래식 마니아가 아니니까요.) 당신의 15번 예찬은 거기서 끝났다면 저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정도 극찬은 대상만 다를 뿐이지, 모든 사람이 하는 거니까 말입니다. 당신이 베토벤을 극찬하는 것이나, 제가 너바나에 빠지는 것이나 별 다를 게 없다는 거죠.
그러나 당신은 15번의 매력에 듬뿍 취한 나머지 파헬벨의 '캐논'을 '허접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비하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말 유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베토벤을 신으로 섬기건 말건 저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너바나를 가지고 '얼터너티브의 영웅' 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하지만 당신에게 파헬벨의 캐논을 모욕할 권리는 없습니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의 리더' 라는 직위로도, 파헬벨을 허투루 말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당신의 심리 근저에 무엇이 박혀 있길래 파헬벨을, 나아가서 파헬벨의 음악을 듣는 사람까지 모욕한단 말입니까.
제 짧은 생각입니다만, 파헬벨도 당신한테서 '허접한' 이라는 말을 들을려고 캐논을 만들지는 않았을겁니다. 그 캐논이 아직까지 이렇게 사람들에게서 남아있는 건 파헬벨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파헬벨이 정말로 허접한 노래를 만들었고, 그 베토벤의 15번이 정말 위대한 명곡이고 인류가 망해도 남아야 할 곡일 지도 모릅니다.
(비트. 허영만.
- 본문과는 일절 관계가 없음을 밝힙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세상에는 베토벤을 듣는 사람도 있지만, 파헬벨을 듣는 사람도, 너바나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듣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이 공존하거든요. 조윤범씨에게는 아무래도 파헬벨을 듣는 사람 (그외 너바나와 엘비스의 음악을 듣는 사람도)과 공존하는 방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다시 한국일보 파워클래식에 글을 쓸 때에는, 파헬벨을 듣는 사람과도 공존할 수 있는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의 리더 조윤범씨였으면 합니다. 새해 잘 맞이하십시오.